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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6

Ep.196지역일 수도 있다! 내가 ‘나’다워지는 제3의 공간!

2024.04.24
1982년 한국정치학회보에 ‘인구정책의 기본방향에 관한 이론적 검토’라는 제목의 인구 관련 우수 논문이 하나 실렸습니다. 급격한 인구 증가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손꼽히고 있어 인구 팽창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를 이론적으로 분석한 논문입니다.
<1982년 한국정치학회보에 실린 인구 팽창 위기 관련 논문[1], 1970년대-1980년대 산아 제한 포스터>
그런데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특히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동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는지 지난 7년 지역을 직접 돌아다니며 연구해 온 더가능연구소의 부대표 조희정 박사의 이야기 이번주도 이어서 전합니다.
[1]당시 한국외국어대학교 구자용 교수의 논문에서도 인간의 출산은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들이 작용하는 복합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링크는 👉(클릭!)
Q. 몇 년 전만 해도 귀농, 귀촌 그리고 어디 지역에서 한 달 살기 이런 게 엄청나게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한 현상도 조금 주춤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어요.
현재 1년에 50만 명이 귀농, 귀촌을 하는데 99%가 귀촌이에요. 귀농은 아니고요. 과거 기준으로 보면 은퇴자가 별장 짓는 귀촌이 많은 편인데 그 부류의 특징은 지역 주민과의 관계 형성은 별로 없는 편이고 연령이 높아요. 그다음에 나타난 UJI턴은 (지역 창업에 관심을 갖고 지역을 찾는 청년들을 주로 의미하며, U턴은 자기 고향이 있는 지역으로 돌아가는 경우, J턴은 도시로 갔다가 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경우, I턴은 도시에서 지역으로 가는 경우를 의미한다.) 연령이 낮고 지역 주민과 관계를 맺으며 창업 등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인데 상대적으로 자본은 넉넉하지 않아요.
하지만 평균적으로 50만 명이 귀촌한다고 해서 모두 아름답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는 않아요. 역귀촌도 어마어마하게 많고요. 자기가 생각했던 판타지에 대한 현실 깨달음이 있기도 하고 처음에 지역으로 가고자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나중에는 복지 인프라의 부족으로 역귀촌하는 경우도 꽤 있고요. 그러다 보니 수도권이나 수도권 주변의 위성도시인 ‘배드타운’에 고령층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럼 지역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돈을 갖다 쏟아붓는 게 좋은지, 하드웨어를 고치는 게 좋은지, 쓸만한 사람을 양성하는 게 좋은지 등 여러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 그리고 개인과 지역을 연결해 주는 중간 연결조직입니다. 일본에서는 ‘커뮤니티 디자이너’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로컬 플레이어’라고도 합니다. 약한 유대의 연결조직이 지역에서 어떤 가능성을 만들 수 있는 움직임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Q. 중간 연결조직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역에 갔을 때 그 지역의 매력이라든지 지역의 생활을 소개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라는 거죠. 단순히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뭔가 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제가 지역에 돌아다닐 때 보통 두 가지를 중요하게 보는데 하나는 인구를 늘려야 한다 인구가 없어서 우리 지역이 망한다라고 주장할 때 그러면 인구가 몇 명이면 좋은데요? 하고 물으면 답을 못하세요. 그냥 청년 유출이 심하고, 고령화가 심하다는 것만 보이는 것인데요. 지역에 살고 있으면 결과적으로 10년 전보다는 줄어들었다 느끼지만 지역에 살 때는 의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래서 갑자기 지역에서 뭘 하자 그러면 어색하고 힘들어하죠.
<지난 2월 8일 SBS 목동 본사에서 미래팀장과 인터뷰 중인 조희정 박사>
두 번째는 도대체 지역에서 사는 것이 뭐냐? 그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있는가 하는 거죠. ‘지역에서 사는 것은 도시랑 다르다’ 딱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살려고 간다’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는데 지역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가한 소리 한다’ 이렇게 되는 거죠. 지역도 도시만큼 돈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결국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 어디서 살기를 원하는 가가 중요한 거잖아요. 그럼 행복한 게 뭐냐, 저는 그 지역에 가서 이 지역이 괜찮은 지역인가를 볼 때 사람들의 표정을 보거든요.

어떤 사람은 돈이 많이 들어왔을 때 행복하고, 어떤 사람들은 친구가 많아졌을 때 행복할 수 있고 하지만 대부분 제일 행복할 때는 ‘나에게 내 일이 있는 경우’거든요. 나도 뭘 할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지역 프로젝트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외지인들이 와서 체류하면서 주민들과 교류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지역 프로젝트로 인해 ‘청년이 한 명도 안 왔었는데 많이 오게 됐다’ 지역민들은 그게 재밌다 느끼게 되고 외지에서 온 청년은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여기서 의미 있는 뭔가를 할 수 있다고?’ 하는 개인적인 보람, 커뮤니티 안에서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효능감을 느끼고, 그 힘으로 앞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계량적이고 시혜적인 관점이 아니라 관계, 소통적 관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Q. 예를 들면 어떤 사례가 있을까요?
외지 청년이 지역에 갔다고 가정할 때 관공서 사무실에 가서 ‘똑똑똑’ “저는 이 지역에 관심이 있어서 왔어요. 관계인구가 되고 싶어요”…이런 사람은 없어요. 예를 들어 강릉에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갔는데 계속 가다 보니 지역 관련 뭔가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나 프로젝트를 보게 되고 거기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되고, 이런 방식으로 관계인구가 되는 것인데요. 일본에서는 ‘관계안내소’라고 해서 이러한 지역 프로젝트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공간들이 있습니다. 지난해 제가 일본의 관계 안내소 50개의 사례를 봤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소통 협력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외지인들에게 지역에 대해 소개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왜 관계안내소라고 하냐면 관광안내소하고 차별화하기 위한 것인데요. 관광안내소는 주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명소를 안내하고 지역 특산품을 파는 것이 목적이라면 관계안내소는 그냥 검색하면 나오는 그런 곳 말고 그 지역에 누가 농사를 짓고 있는데 공정하게 지산지소[2]를 생각하며 농사를 짓고 있고, 그 농산물이 그 옆에 있는 굉장히 재밌는 식당에서 요리로 만들어지는데 그곳은 주민들이 매일 아침마다 500엔씩에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고 식사를 할 수도 있는데, 거기 셰프는 우연히 그 지역에 왔다가 관계인구가 된 이탈리안이다 뭐 이런 식의 스토리텔링이 있는 안내소고요. 가장 큰 특징은 지역주민들이 온다는 거예요. 관광지는 지역주민들은 안 가잖아요? 그렇게 그 장소가 주민의 사랑방이 되기도 하고 이런저런 지역 관련 프로젝트들을 하다 보니 축제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더라도 이 지역에 살다 보면 어떤 장점이 있는지 혹은 지금 이 지역의 문제는 이런 것인데 우리 이거 어떻게 해결해 볼까요? 하는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 가운데서 누군가가 외지인들이 좀 와서 꾸준히 일해주면 좋은데 제안을 하면 누군가가 어?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우리 지역 관심 있다고 온 청년 있었는데 그 친구 연결해 줄까? 하는 식으로 창업 매칭이 이뤄지기도 하고 향유형, 학습형, 생활형, 협업형, 생산형 등 다양한 교류가 이뤄지더라고요.
<일본 관계안내소의 대표 모델인 ‘시마코토 아카데미’. 소셜인재육성 강좌를 통한 관계안내소로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가장 오랜된 모델이다. 링크는 👉(클릭!)>
[2]지산지소란 일본의 지역 먹거리 운동을 가리키는 말로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운동이다.
Q. 일본의 ‘관계안내소’가 우리 행안부에서 만든 ‘소통협력공간’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요?
그렇죠. 소통 협력 공간도 있고 지역에 흔한 카페인데 기능적으로 관계안내소인 곳도 있어요. 결국은 제3의 공간, 소통협력공간이든 관계안내소이든 사람들이 지금 원하는 공간은 내 집, 내 직장 외에 내가 나로 있으면서 내 친구도 만나고 내가 편히 쉴 수도 있고 또 다른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공간, 미국의 도시사회학자였던 레이 올든버그가 주장했던 ‘제3의 공간’ 그런 얘기가 지역 씬에서는 많이 나와요.
<레이 올든버그 교수가 주장했던 ‘제3의 장소’ 개념이 지역 재생 관련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로컬의 발견-제3의 장소와 관계인구’는 조희정 박사가 공동 번역한 ‘제3의 장소’를 지역과 연계해 해석한 이시야마 노부타카 교수의 책이다.>
올든버그 교수는 영국의 펍 같이 그 공간은 계급장 없이 평등해야 하고 익명이 보장되어야 하고 집이나 직장에서처럼 의무나 권한 같은 거 없이 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맥주 한 잔 하면서 같이 운동 경기를 응원할 수도 있고 그런 의미에 집, 직장을 넘어서는 플러스알파의 커뮤니티 공간이 필요하다는 거죠. 저희가 관계인구를 만들려는 것은 지역이 나아지기 위해서 이잖아요. 그런데 지역이 나아지기 위해 개인이 희생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그럼 개인이 여기 와서 행복해야 지역이 나아지는 이게 다 엮여 있더라고요.
Q. 국내에서 이런 시도가 잘 되고 있는 지역은 어디가 있을까요?
소통협력 공간은 어쨌든 지역에서 소통과 협력을 늘리겠다는 거잖아요. 그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어요. 춘천에서는 주민들 간에 ‘사회혁신실험’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거창한 프로젝트는 아니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한 잔을 지역의 고등학생에게 기부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그런 기부 형식은 외국에서도 많긴한데 춘천에서는 고등학생을 타깃으로 잡은 거예요. 그러면 그 고등학생들이 뭘 느끼겠는가 누군가가 나를 위해 아니 우리 고등학생들을 위해 커피를 사주셨구나 이 공간을 다시 보게 되고 지역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지역에 없던 마음이 요만큼은 생기겠죠. 그게 쌓이면 자기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고요.
<맡겨놓은 카페 기획안- 춘천 중간지원조직 공동사업 TF> ⓒ맡겨놓은 카페 링크는 👉(클릭!)
밀양에서는 폐교된 밀양대학교를 활용해서 지역을 하나의 캠퍼스로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에코샵을 운영하면 환경학부가 되고 디자인 학원을 운영하면 미술학부가 되고 이런 식으로 지역을 단과대학으로 흩어 뜨려놓는 실험을 하려고 하는 상황이에요. 창업을 중심으로 보려면 인천 개항로 사례가 볼 만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행안부의 소통 협력 공간 사업들이고요. 문화부의 문화도시 사업도 있어요. 관객으로 공연을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자기 손으로 뭔가를 창작해 보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거죠. 지역의 디자인을 바꾸거나 벽화 그리는 활동 등등 돈을 받고 안 받고도 중요하지만 거기에서 보람을 느끼고 의미를 찾게 되고 내가 이런 것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고 같이 하는 동료를 만나게 되는 부분, 그런 효과가 최근 지역에서 새롭게 생기고 있는 정책 사업의 흐름인데 재밌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7년 지역 창업 등 계속 현장을 다니면서 연구해 오신 입장에서 변화가 보이시는지 물었습니다.

“2014년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생기고, 거기를 거점으로 2017년 중기부가 로컬 크리에이터를 키운 게 벌써 7년 정도 되는데요. 제가 연구한 기간하고 비슷합니다. 초기에는 정말 별로 없었는데 양적으로 많이 늘어난 게 사실입니다. 초기에는 게스트하우스, 독립서점, 카페 이런 식이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 게스트하우스가 복합문화공간이 되고, 뭔가 다른 프로젝트도 하면서 공간의 용도가 복합적으로 변화해 가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이렇게 프로젝트들이 더 다양화되고 지속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에 이제는 관심을 가져 보려 합니다.”

조희정 박사는 기본적으로 자영업은 어디서 해도 쉽지 않다면서 지역에서의 창업도 정말 힘들긴 하다는 것을 전제로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시도를 통해 지역이 조금씩 활성화되고, 새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뭔가 지역에서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면서 누군가에게는 지역이 제3의 장소가 되어가는 과정이 의미 있는 변화라고 강조했습니다.

새삼 내가 나다울 수 있는 나의 제3의 장소는 어딜까, 혹시 지역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글 : 미래팀 이정애 기자 (cal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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